임진왜란때 왜의 대군이 쳐들어 오자 송상현공과 함께 동래성을 지키다가 순사한 군·관·민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무덤입니다.
1731년(영조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동래읍성을 수축할 때, 격전지였던 옛 남문터에서 전사한 많은 이의 유골이 포환, 화살촉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형골이 완연한 유해가 12구, 그 이외에는 잔해가 많았습니다.
이에 이 충절의 유해를 거두어 부의 남쪽 삼성대의 서쪽 구릉지(현재 내성중학교 부근)에 여섯 무덤을 만들어 안장하고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이란 비를 세웠습니다. 또 제전(祭田)을 급여하고 향교에 맡겨 매년 추석에 유생으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게 하였으며, 순절일에는 관에서 장사(壯士)를 보내어 제사를 모시게 하였습니다.
일제말 토지개간으로 동래구 복천동 뒷산 영보단(현재 시립박물관 복천분관내) 부근에 이장되었고, 그 후 비석을 옮겨 세웠습니다.
1731년(영조7년) 7월에 세워졌으며, 글은 부사 정언섭이 썼고, 비 높이는 103㎝, 넓이 45㎝로 전면에 임진전망유해지총(壬辰戰亡遺骸之塚), 뒷면에는 10행으로 적은 육총(六塚)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금강공원으로 이전, 정화하여 매년 음력4월 15일 동래구에서 제향을 봉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