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모두의 삶의 자원입니다.
자연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원천으로서 오묘한 법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여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땅을 금수강산으로 가꾸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 향기 높은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팽창에 따른 공기의 오염, 물의 오탁, 녹지의 황폐와 인간의 무분별한 훼손등으로 자연의 평형이 상실되어 생활환경이 악화됨으로 인간과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 유지하는데 정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이땅을 보다 더 아름답고 쓸모 있는 낙원으로 만들어 길이 후손에게 물려 주고자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자연보호헌장을 제정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한 실천을 다짐합니다.
-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국가나 공공 단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의무다.
-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 자원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 자연보호는 가정 학교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교육을 통하여 체질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직은 어둠이다 밝혀져야 할 것이 가려진 이 허위의 빛은 빛이 아니다. 죽은 이들은 죽어 한 세기가 다 되도록 눈감지 못한 채 원통함으로 구천을 떠돌고, 죽인자들은 대명천지 펄펄하게 살아 고개쳐들고 설치는 여기는 아직 식민의 땅이요.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들이 우리들의 이름과 조국의 이름을 부르며, 왜 그렇게 처절하게 죽어가야 했는지 어떻게 죽임 당했는지도 밝히지 못한 우리는 참으로 못난 후손들이다.
어느 이름모를 하늘 아래서 캄캄한 굴속에서 맹수와 병마가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더러운 침략자 제국주의 일본의 군복을 덮어쓰고, 손톱에 피멍이 지며, 죽어간 영령들의 시신은 커녕 이름조차 거두지 못한 우리들은 조국은 아아 부끄러운 죄인이다.
만시지탄이나 이 참회의 눈물을 모아 뉘우침으로 칼날을 세워 처참한 죽음의 진상과 굴절된 역사의 진실을 기필코 밝혀야 한다는 의지를 모아 여기 구천을 헤매는 원혼들이 평안히 잠드시길 빌어 올리며 우리 배달겨레의 정통성과 당당한 민족혼의 계승을 위하여 그 실천의 푯대로서 오늘 우리는 삼가 이 위령비를 세운다.
이 땅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비 앞에서 어제는 더 앞선 과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로 흘러오는 것이며, 또한 오늘의 역사는 어제로 묻혀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역사로 피어나는 것임을 깊이 깨우칠 일이다.
명예 고문 이기택 단군기원 사천삼백이십육년팔월스무아흐렛날 백신종짓고쓰다.
건립일자 | 1996. 3. 6 |
---|---|
제막일자 | 1996. 3.30 |
건 립 | 부산광역시 부산문인협회 |
비 문 | 김상훈 |
글 씨 | 조영조 |
제 작 | 정희욱 |
- 단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으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간한 듯 둘렸다.
- 석류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여밀 가슴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히 터지는 추정(秋睛)
한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정운(丁芸)이영도 시인은 1916.10.22.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1976.3.5. 서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945년 죽순지를 통해 시조「제야」와「바위」로 문단에 등단하셨으며, 시조집<청저집><석류>유고시조집<언약>, 수필집 <춘근집> <비둘기 내리는 뜨락><머나 먼 사념의 길목>, 유고 수필집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서한집<사랑하였으므로 행복 하였네라>가 있습니다.
민족전통의 고유 시가인 시조의 시전을 일구기도 하고 씨뿌리기도 한 분들이 적지는 않지만 진실로 여기에다 실팍한 나무를 심고 짙푸르게 가꾸어 금빛 열매를 맺게 한 이는 드뭅니다. 정운 시인은 애모와 회한으로 점철된 우리네 토착적 정서를 가장 절실하게 노래함으로써 민족시전에 한 그루 청목을 세워 많은 숙과를 얻어 내고 스스로도 시단의 교목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는 시조를 목숨의 기도로 삼고 애락과 무상을 다스렸고 격정과 통분을 달래었으며 고독을 법열로 번뇌도 향으로 승화시키면서 단아한 용자와 청고한 품격을 솔빛처럼 간직했던 것입니다.
「정녕 윤회가 있어 다시 받아야 할 몸이라면 한오리 연기로 올라 구름이나 되었다가 청산의 여여한 기백이나 굽어보며 유유히 산악을 넘노니겠다.」고 한 생시의 소망이 뜻대로 이루어져 바로 그 구름이 굽어볼 여기 금정산 자락에다 빗돌을 세워 오래 추념코자 하는 바입니다.
1996.3.6
김 상 훈 삼가짓다.
송촌 지석영선생은 1855. 5. 1일 서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22세때 종두귀감(種痘龜鑑)이란 책을 읽고 종두제민(種痘濟民)의 뜻을 품어 이 곳 부산에 있던 제생원에 들어가 종두법을 배워 우리나라 최초로 우두를 실시하였습니다.
28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으로 물러나 우두신설(牛痘新說)을 저술하였고 다시 사헌부장 령이 되었으나 무당들의 모함으로 강진 신지도로 귀양 갔다가 4년만에 풀려나 서울에서 우두보영 당(牛痘保瓔當)을 개설하여 자선종두를 실시하고 다시 형조참의에 복직되고 한성 부윤, 진주목사등을 거쳐 1895년에 동래부사, 동래관찰사가 되어 우두시술에 힘쓰는 한편 부산항재 판소 판사를 겸하여 일본인들의 밀수를 근절시키는 등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을미사변뒤 다시 모함을 받아 황해도의 초도에 귀양 갔다가 풀려 났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1900년에 경성의학교(현재 서울의대)를 설립하였고 해부학을 발표하였습니다. 한글보급에도 힘써 자전석요를 간행하였고 보영산과 영효산을 제조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1935년 2월1일 81세로 돌아가시고 훈5등팔괘장과 태극장훈장을 받으셨습니다. 이 공덕비는 선생의 공덕을 기리어 선생이 인정을 베풀던 이곳에 지씨일문이 합력하여 1988년 4월 2일에 세운 것입니다.
동시·꽃씨 | |||||
---|---|---|---|---|---|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가 숨어있다. |
|||||
- 국제신보사 - 부산문인협회 - 1971년 7월3일 별세 |
시인 최계락은 1930년 9월 3일 경남 진양에서 태어나 진주중학시절 동시 "꽃"으로 출발한 이래 향토색 짙은 작품들로 문단에서 왕성히 활약하는 한편 국제신보사 편집부국장으로 재직중 1970. 7. 4 향년 40세로 별세하니 생존 중 "꽃씨", "철둑길의 들꽃"의 두 시집 외에 부산시 문화상과 소천 아동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유족으론 미망인 구정희여사와 아들 형림, 여식 정림, 숙림, 순림, 혜림, 옥림이 있습니다.
사진작가 독보 허종배선생 기념비
녹두알만한 카메라의 눈으로 참을 담아내기에 칠십평생을 불살랐던 분으로 삼천포 고향 바다와 부산항구 광복동, 자갈치, 대연동, 못골시장 골목을 누비다간 독보 허종배선생의 작품이 프랑스 살롱전에 걸렸다거나 이 땅 사진예술단체의 산실에 앉았었거나 빛과 어둠 속을 끝내 가난과 고독에 살다가신 길 그런 이웃을 두고 간 저승산상에의 도표삼아 벗들의 기원을 돌에 새겼다.
파성 설창수 짓고 목운 김동재 쓰다
1993년8월28일
경남 삼천포 출생
한국사진작가협회 창립전 특선
외무부주재 해외선위 사진콘테스트입선
프랑스 국제사진살롱 입선
공보부중앙공보관경남분관
사진담당
동아일보사주최국제사진전 심사위원
놀원문화상 수상
한국사진협회 자문위원 위촉
제1회 부산시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제1회 대한민국 사진전람회(국전)
심사위원
한국사진문화상 수상(사협)
부산시문화상 수상(예술부문)
개인사진전람회(19회)
어머니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하고
불러 보면
금시로 따스해 오는
내 마음
아버지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하고
불러 보면
오오- 하고 들려오는 듯
목소리
참말 이 세상에선
하나 밖에 없는
이름들
바위도 오래 되면
깎여지는데
해같이 달같이만 오랠
엄마 아빠의
이름
주요작품연보
1925년 : "신소년"지에 "뱀새끼의 무도"발표
1929년 :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난과 사랑"입선
1943년 : 희곡 "여명"등 발표
1952년 : 소년소설 "피리부는 소년"발표
1966년 : 문예지 "문학시대"창간
1971년 : 단편집 "해변"발간
1973년 : 단편 "풍미"발간
1977년 : 중편 "어머니"발표
1978년 : 동인지 "갈숲"발간
1981년 : 중편 "아버지"발표
1986년 : 시 "새벽길"발표 등 600여편에 이르는 시,소설,수필,아동문학,번역문학작품 발표
선생님의 생애
1906년 : 5월 23일 경남합천 출생
1918년 : 고향에서 보통학교 졸업
1920년 : 서울에서 고학
1928년 : 일본히로시마에서 학원설립 교편 잡음
1940년 : 잡지 "신세계"편집장, 한양 영화사 근무
1945년 : 거창검사국에 수감되었다가 해방으로 석방, 배재중학교 교사
1947년 : 동래중학교 교사
1949년 : 부산수산대학 전임강사
1972년 : 부산수산대학 교수로 정년퇴임
부산수산대학 명예교수가 됨
1987년 : 1월 3일 별세
선생님은 당신의 80생애를 문학예술과 후학 교육에 바치셨습니다.
그 공로, 업적이 너무 빛나는 것이었기에 선생님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돌을 깎아 여기 비를 세우고 영원히 기념하고자 합니다.
1988년 : 5월 14일 문학비 건립위원 일동
중요수상
1958년 : 제1회 부산시 문화상 받음
1962년 : 제1회 경상남도 문화상 받음
1979년 : 대한민국 예술상 받음
1983년 : 제1회 한국불교 아동문학상 받음
1983년 :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 받음
1986년 : 3.1 문화상 등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