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아대학교 뒤편으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구덕 제1저수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심속의 자연공원답게 신선한 공기와 산속에서 불어 오는 잔잔한 바람은 이곳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있어 주로 대학생, 직장인들의 쉼터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수지 주변으로 산책로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벤치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축조시기 | 1900년~1902년 |
저수지 규모 | 3,500㎡, 저수량 6,274㎥, 수심 9.8m, 여수로(길이75.2m, 폭 17.9m) |
상수원 공급 중단 | 1968년 |
분수가동 | 매년 5월~9월(1일 6회) ※ 기상 악화시 가동중단등 탄력적 운영 |
관리기관 | 부산시설공단(중앙공원사업소) |
구덕운동장에서 꽃동네 마을 쪽으로 올라가면 정상 부근에서 구덕야영장이라는 팻말을 따라 구덕야영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구덕저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보수동, 충무동, 남포동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부산항에 출입하는 일본배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축조하였습니다. 저수지 주변에는 편백나무, 삼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축조시기 | 1900년~1902년 |
저수지 규모 | 3,700㎡, 저수량 6,800㎥, 수심 6m, 제방(길이 100m, 폭 39m) |
상수원 공급 중단 | 1968년 |
수변체육공원 조성 | 2005년 7월 (분수시설 설치, 황토포장, 편의시설 설치 등) |
관리기관 | 서구청 |
위 치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4동 산29번지 일대 |
관리주체 | 부산광역시 동구청 |
연혁 및 사적(事蹟) | 2000년 1월 부산시 문화예술과와 시립박물관 합동지표조사 실시 |
시 대 | 조선시대 |
유적현황 및 성격 | 해발 405m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봉수대 주변의 전체적인 지형은 서쪽이 비교적 가파르며, 동남~서북을 장축으로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다가 다시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
정상부와 남쪽경사지에는 암반이 돌출되어 있으며, 이 암반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입구를 가면 평면 말각장방형(抹角長方形)의 연대(煙臺)가 화강석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연대 중앙부에 있는 직경 1.5m, 깊이 0.5m의 원형 화덕은 화강석으로, 주변에 암반과 일부 석재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표조사 결과 연대 중앙에 복원되어 있는 화덕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약 4.5m 떨어진 곳에서 가로 90cm × 세로 50cm 크기의 장대석이 확인되었고, 서북쪽으로 가면서 원형을 그리듯 3~4개의 석재들이 길이 방향으로 암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석재들은 화덕 중심부에서 4.5m간격을 유지하고 있어 직경 9m 규모의 기단석으로 추정됩니다.
봉수대의 주변시설로 봉군(烽軍)의 숙소, 참호, 담장 등을 들 수 있는데, 서쪽 암반의 남쪽에 폭 약 1m 정도의 석렬이 1~2단 정도 확인되었고, 복원된 봉군석축 아래의 암반 외곽을 거쳐 동쪽 20~30cm 크기의 잡석렬과 연결되어 있어 담장으로 추정됩니다.
구봉봉수대는 조선 영조 원년(1725)에 동래부사 이중협의 건의에 따라 조선 현종때 구봉으로 이설되어 폐지되었으며, 인근 석성산봉수(石城山烽燧)에서 이설되어 고종35년(1898)까지 173년간 사용된 것으로, 동쪽으로 황령산봉수대와 서쪽으로는 다대포 응봉봉수대와 연락하였습니다.
부산진 소속으로 봉수대에는 별장(別將), 감고(監考 혹은 伍長), 봉군을 두었는데, 별장은 6명, 감고는 1명, 봉군은 100명이 배치되어 상하번(上下番)으로 나뉘어 10일마다 교대로 근무하였다고 합니다.
구봉 봉수대는 정확한 고고학적 자료는 없으나,기초조사 결과 원형의 연변 봉수대로서 가덕도 연대산 봉수대, 기장 이길 봉수대 및 서생 나사 봉수대 등의 연대 객단석 직경 9m 규모와 같아 이곳 봉화 시설도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 가덕도에 복원되어 있는 연대산 봉화 시설의 1/4규모로 축소 제작하였습니다. 우리 조상의 향토수호의식과 국토방위정신을 되새기고, 학생들에게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2002년 6월 제작한 이 봉화시설 모형을 우리 모두가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