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추모공원은 고인에 대한 추모와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추모 시·편지 공모전을 개최하였다.
떠난 이들을 향하여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시민들의 사연을 함께 만나보자
또
또 봐라~
또 웃는다.
이 못난 넘이 그리도 좋소?
그래 애먹이고 지 맘대로인데, 뭐가 그래 좋소?
어린 6남매 남겨놓고 혼자 훌훌 가신 아버지도
단 한번도 밉다 소리 안하고~
그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 여섯놈 다키워 시집장가 보내도,
힘들다 소리 한번 안하고~
내만 보면 뭐가 그래 좋았소?
오늘 아부지 만났소? 욕도 실컷 쫌 하고 넋두리도 밤새 좀 하소.
밤늦도로 할 욕 하다하고 아부지 옆에서 편하게 한숨 자소.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비린내 나는 옷좀 입지말고
얌말 기운 거 좀 신지 마록
이쁜거 좀 입으소
아부지 팔짱끼고 경치 좋은데 산책도 하고 데이트도 좀 하소.
마이 죄송하고 마이 고맙습니다.
아부지 없는 50년 평생을 이 못난 놈 하나 믿고,
가진 거 먼지 한톨 안남기고 다 주고 가셨네.
붙어 있던 살도 내 다 주고 갔소?
와 그래 말라뿟소?
그래 애먹이는데, 좀 때리기도 하고 욕도 좀하고 그라지,
뭐 이뿌다고 전부 내말이 다맞고 다 잘한다 하고~
그, 뭐 맨날 내만보면 실실 웃었소?
박스 주우러 다니지 마시라고 큰소리치도 웃고~
집에 모아다 놓은 박스 다 갖다 버려도 웃고
아이구 바보야~
엄마는 바보요?
밉으면 밉다, 싫으면 싫타 쫌 하지.
맨날 설설 웃기만 웃고~
그때 엄마집에 가서 박스 모은거 다 버리고 고함질러서 진짜 미안하요.
내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힘들게 자꾸 주우러 다니니 마음도 아푸고 화도 나고 그래서~
엄마 입어서 그런거 아니요.
알지요 엄마?
오늘 엄마 가는데 그 때 소리지른게 너무도 마음에 걸려서 모진 이놈도 눈물이 마이 났소.
다른 사람들이 슬픈척 한다 할까봐~
억지로 우는 척 하는가 싶을까봐~
3일 내내 목구멍을 눌리며 참았는데~
오늘은 나도 마이 울었소.
엄마가 지금 가 있는 곳 나도 갈 수만 있다면
한번 가서 보고 오고 싶소.
아버지는 만났는가?
둘이 계신데가 지낼만은 한가?
편안하고 재밌게 사는거 보고만 와도 가슴 중간에 박힌 돌뎅이가 좀 내려갈거 같은데~
아이구 고마~
내 편할라고 엄마, 아부지 살만한 곳이라 믿을라요.
이제 마음껏 설설 웃고, 하고 싶은거 다하고 그래 사소.
엄마가 모든 거 다주고 키워준 나도 벌써 57살이요.
엄마 덕분에 나는 잘살고 잘지내고 있소/
엄마도 쫌 내걱정, 다른 자식 걱정, 손주들 걱정 고만좀 하고 이제 좀 재밌게 사소.
엄마 묵고 싶은거 묵고 가고 싶은데 가고~
화나면 화도 쫌 내고, 욕하고 싶으면 욕도 쫌 하고~
우리 바보 엄마,
고맙소,
고맙습니다.
진짜 너무 고맙고 고맙습니다.
엄마~
엄마하고 지금 딱 한번만 둘이서 손잡고,
전에 엄마 잘묵던 송도에 연한갈비 한번만 묵고 싶소.
둘이서 바닷가 산책 한번만 더하고 엄마 벤치에 앉아 있으면, 커피 트럭가서 우리 엄마 묵게 믹스커피, 설탕 한숟가락 더 넣어 달라고 사서 들고 가면, 둘이서 맛있게 묵고
그라고 가면 안되겠소?
고기 맛있게 묵고 계산하는데 옆에 서서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하다고” 투정부리시던 귀여븐 우리 엄마~딱 한번만 더 같이하고 가소. 엄마.
나도 세상에 무서븐게 별로 없는데,
오늘은 뭐가 무서븐지 쪼끔 무섭네요.
6년을 병원에 눕어 있어도 엄마가 이 세상에 있어서 든든했는데.
그렇게 눕어 있게 한것도 내 욕심인 듯 해서 또 마이 미안하요.
엄마~
알지요?
내가 엄마 무지하게 좋아하는거?
부끄러버서 말은 못해도 엄마 손깍지 끼고 걸을 때 내 마음 쪼끔은 알았지요?
고기쌈 너무 크게 싸준다고~
그래도 꾸역꾸역 웃으면서 다 묵어주고 귀엽게 투정부리던 우리 엄마~
그래도 좋았지요?
내가 말로는 못해도 내가 엄마 마이 좋아하는 거 쪼끔은 알았지요?
엄마~
나는 엄마가 바보 아닌 줄 잘 압니다.
밉은 짓을 해도 용서해서 웃어주신거였고,
화를 내도 사랑하는 줄 아니까 웃어주신거였고
우리 바보 엄마~
에이 이 바보야~
쫌 엄마를 위해 살다가지.
뭐 그리 잘난 아들이라고 어째 그래 잘해만 주셨소.
엄마
우리 엄마
고마버요
진짜 고마버요 엄마.
바보 우리엄마
고마버요
2021년 7월 14일 추모공원 벽식봉안담에서
사랑하는 아들 성태가
“오늘 하루는 자고 가면 안 되겠니?”
허리가 딱 반으로 굽어 땅만 바라보던 엄마, 갑자기 최대한 윗몸을 들어 올리며 애타게 나를 쳐다보시네요. 그러나 또 꿈입니다. 생시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엄마를 잠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던 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지만, 한 번이라도 같이 자고 싶다며 조르는 모습을 여지없이 목격했기에 나는 오늘 아침도 우울한 기상을 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하긴, 자주 있는 일이라 영~ 새삼스럽지는 않구요.
엄마는 1980년대 산업화 시절의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으로 살아오신 분이셨지요!
완고한 할머니 모시며 직장 일이 전부인 아버지를 내조하면서 자식 다섯의 학업을 뒷바라지하셨던, 그 시절 억척같은 대한민국의 어머니임이 분명하셨습니다.
색바래진 결혼사진 속에는 여리고 고왔던 우리 엄마의 고왔던 젊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터-,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모습은 남자들의 손보다 더 투박한 흑갈
색
무쇠 손이 먼저입니다. 모든 거친 일에 가장 먼저 앞장서서 해내고야 마는, 어쩌면 저돌적인 ‘불도저’의 인상만 강렬할 따름입니다. 어떠한 버겁고 어려운 일이라도 엄마라면
무조건 감당할 수 있는 천하무적의 가능성을 갖고 계신 분으로 당연히 알고 지냈거든요!
그 흔한 “힘들다”는 표현조차 엄마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엄마니까 늘 바쁘고, 엄마니까 가장 곤란한 일만 하셔야 하고, 엄마니까 여리여리한 여성의 고운 얼굴 정도는 사라져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저 엄마의 과업(科業) 진행에만
충실하시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식구들의 영원한 지주목(支柱木)으로만 존재하실 줄 알았던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늙어가셨습니다. 아마도 자식들 모두 소위 남들 부러워하는 상위 대학과 그럴듯한
직장, 든든한 배우자로 연결되는 최강라인(?)으로 인생의 방향을 이끌어주신 이후부터였을 겁니다. 이제까지 강건했던 우리 엄마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전혀 낯선 신체의 모습으로
바꾸어 가셨습니다. 그동안 펼치셨던 당신의 위력이 푹푹 꺼져가며 늘어나는 주름 수에 비례하여 점차 꼬부랑 허리로 신체의 중심을 힘없이 접어가셨습니다.
내가 엄마를 찾을 때는 항상 무언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참으로 이기적이었던 이 딸은 긴 세월 성장하느라, 공부하느라, 직장 다니느라 의식주가 불편해질 때는
여지없이 도우미로서의 엄마를 원했지요. 놀라울 정도의 해결력을 가진 엄마의 능력은 한 번도 내게 실망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부르면 금세 등장하셔서 모든 것을 정돈해
주셨으니-.
그러나 키가 작아진 이후의 엄마는 더는 내가 필요로 했던 그분이 아니셨습니다.
접힌 허리 탓으로 짧아진 몸만큼 더 보잘것없는 할머니, 내게는 따~악 그뿐이셨습니다. 아쉬울 때 당신을 찾을 이유가,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그동안 내가 바라던 ‘수행
전담사’로서의 엄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거든요.
대신 이제는 당신이 자식들을 찾으셨지요. 마치 평생 베푸신 의식주의 필수 요건을 되돌려 보상받으시려는 것처럼-.
엄마에게서 얻을 수 있는 편리함이 사라졌다고 여긴 탓이었을까요? 어쩌면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오히려 시간 낭비라는 몹쓸 내 속마음이었을 성도 싶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가 나를 찾는 횟수의 몇 분의 몇 어치도 안되는 만큼의 방문으로만 반응했던 나-, 말 그대로 완전한 불효녀였답니다. 코로나19로 만남을 자제하는 시기에는
구실이 더 좋아져 엄마를 찾아뵙지 못하는 이유로 삼아 그럴듯하게 합리화까지 해댔으니 ...... .
“오늘 하루는 나와 자고 가면 안 되겠니?”
이 세상사 마칠 무렵의 엄마는 늘 그렇게 내게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좀 더 같이하고 싶다는 간절한 표현이었으되 나는 당신의 그 한 가지 소망까지도 습관처럼 무조건
미루었지요.
“나~ 곧 퇴임이우! 그때 넘치는 빈 시간은 죄다 엄마와 함께 하리이다~”
아마 적어도 그때의 내 대답은 진심이었을 겁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퇴임 후의 숱한 여유시간 중에 설마, 까짓, 엄마와 하루 자게 되는 기회 없을까 봐!
온 대지를 뜨겁게 달구며 기세등등했던 여름이‘늦더위’라는 명목으로 어지간히 질기게 버티던 2020년 8월 말이었습니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에는 저도
도저히 어쩔 수 없었는지, 드디어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노염(老炎)의 계절만 가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곧 맞이할 무심한 이 딸과의 하룻밤을 기대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이승의 끈을 잡고 있던 엄마가, 더는 견디지 못하시고
바닥이 드러난 기운의 끝자락을 스르르 놓으시며 끝물 더위를 안고 다음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 . ...... .
누군가의 말대로 진짜 거짓말처럼 ...... .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생뚱맞게도 너무 늦은 지금에 와서야 인생의 소중한 시간에 대한 올바른 새로운 시간 셈법이 발동되었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정말 시간을
귀중하게 썼습니다. 누구보다 공부 더하고, 남들보다 돈 많이 버는 순간들이 내게는 가치 있는 삶의 방향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쓴 시간 덕분에 겉으로는 소위
‘속세에서 성과를 이룬 자(?)’로 명명(命名)되어 있으니-.
그런데 허상(虛像)이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은 전혀 계산되지 않은 속 빈 강정 같은 삶을 추구했던 것! 언제든지 실천 가능한 시간이 있는가 하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그 쉬운
진실을 왜 한 번도 따져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앞으로도 나는 ‘자고 가면 안 되겠냐’는 끝나지 않을 꿈속 엄마의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답은 100% 부정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세(現世)에서만 가능한, 정작으로 소중한 금쪽같았을 엄마와의 시간을 영원히 놓쳐버렸기 때문에 ...... .
“오늘 하루는 자고 가면 안 되겠니?”
“어떡하죠? 나는 엄마와의 소중한 순간들을 한 번도 만들 시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못난 이 딸의 잘못으로 영영 가질 수 없는, 모든 기회를 흘려보내고 너무나 허무한
뉘우침으로 후회만 반복하고 있답니다.
엄마, 엄마, 너무나 보고 싶은 우리 엄마 ...... .”